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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성경 공부/ 갈1 20210815

<다른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이 엄중한 경고는 하나님의 온전한 복음을 우리마음에 보존해 주시려는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은 바울의 구원과 사도의 명분에 관한 증거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와 결을 같이 한다.

 

또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다른 복음의 현상도 오늘 우리 곁에 함께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구별하었다는 의미는 출생 전에 이미 사도로 정해졌다는 뜻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사도로 정해져 있는 자를 '은혜'로 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의 직분에 합당하지 않은 자를 '은혜로 부르셨다'는 사실이 바울의 간증이다.

 

이처럼 출생과 구원이 결코 '사람'으로 말미암아 되지 않는다.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사52:3)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사람의 계획이나 의지가 거세된 복음의 세계이다.

수요 성경 공부/ 갈2 20210818

<거짓 형제>

 

'형제'는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그리스도인)들이 다 하나(하나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른다 (히2:11)

 

만일 아버지의 거룩함을 입지 못한 자가 아들 행세를 한다면 '거짓 형제'이다.

갈라디아 2장에서 이 거짓의 증거를 찾는다면, 율법을 향하여 죽은 적이 없는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적이없는 자가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사역을 한다는 점이다.

 

율법을 향하여 죽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보이지 않음을 인하여 거짓 형제가 교회 안에서 자신을 속이고 농간질 하지만,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를 용납하시지 않는다.

 

바울의 마음에 경험된 하나님의 복음과 구원의 분별이 거짓과 참을 갈라 놓는다. 그리고 거짓을 인하여 도리어 하나님의복음이 견고함을 얻는다.

일요 성경 공부/ 갈3 20210822

<믿음으로 아들이 되었으니>

 

영생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의 자손'과 그의 사역 안에서 성취되고 완성되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약속의 자손'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율법은 인생의 하나님을 향한 범법을 확정지어 주는 법이고 율법의 행위에서 믿음의 세계로 몰아가는 시한부 법이다.

율법에 다스려진 자는 죄와 사망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자이다.

'자신을 아는 지식'은 생명을 얻는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

 

'약속의 자손'의 음성을 듣고 믿어지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함께한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과의 유기적 공생 관계로 결속된다.

결국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에 대한 믿음과 함께 성취되고 완전해 진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시 25:10) 

수요 성경 공부/ 갈4 20210825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

 

바울은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에게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들을 생산한 '하가와 사라'의 세계를 제시하며 율법의 종된 삶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자유하는 여자'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아들을 얻는다.

사라가 누리는 자유는 '잉태치 못하고, 구로치 못하고, 버려진' 위치에서, 일방적인 하나님의 약속에 이끌림을 받아 생명을 얻고 누리는 자유이다.

 

이 자유는 '최악과 최선이 경험된 심령'에게 허락된 자유이다.

최악은 육체로 말미암은 모든 것이고 최선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것이다.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악'에 대한분별과 믿음이다.

오늘도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것은 최악에 대한 분별을 잃어 나타내는 종교적 행태이다.

일요 성경 공부/ 갈5 20210829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삶이,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권세이다.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感化된 믿음은 예수의 형상을 나타내는 힘이다.

이 힘은 이웃을 섬길 수 있는 권세를 누리게 한다.

 

자유는 누리는 세계이지 얽매이는 세계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이웃을 스스로 사랑하려고 하면 그 의도는 법이 되고 그 법에 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에겐 온전한 사랑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것과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나타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정복된 자는 그 사랑을 누리며 나타낼 수 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이 사랑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수요 성경 공부/ 갈6 20210901

<예수의 흔적>

 

바울을 괴롭게 하는 세력에 대하여 방패와 창이 준비되어 있다. 바울의 몸에 새겨진 예수의 흔적이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세력들이 갈라디아 교회 안에 나타나 복음을 대적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과 이미 성취된 십자가의 道는 믿는 자의 마음에 뚜렷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어지럽히는 세력으로 인해 복음의 증거는 도리어 견고함을 얻는다.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표'의 세력 안에 머물 수 없었지만, 바울은 '예수의 흔적'으로 모든 대적을 향해 입을 열고 구원의 확증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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