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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자의 산 소망/ 벧전1 20211024

[거듭난 자의 산 소망]

 

베드로는 흩어져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히브리 형제 자매들에게 십자가의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증하는 교제의 편지를 보낸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는 말씀은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인의 소망을 이루는 교제의 내용이다.

 

그리고 거듭난 자들의 마음에 형성된 '산 소망'의 세계를 설명함으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뚜렷이 한다.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된 자들의 마음에 임한 소망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이 아닌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약속'에 모든 소망이 있다.

 

산 소망의 사람은 보지 못한 예수를 사랑하고, 보지 못한 예수를 기다리고, 보지 못한 예수를 인하여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산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2 20211027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하나님 나라 밖에 있고 긍휼을 얻지 못하는 더러운 세계에 속하였던 자가 하나님의 인자함을 맛볼 수 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산 돌되신 예수께서 하나님 집의 기초석이 되셨다.

이 산 돌의 역할 중 하나는 '버려지는' 역할이다.

 

예수는 자신을 찌르고 침 뱉어 영문 밖에 버리는 능욕을 잠잠히 받으시는 어린양의 제사에 참예하셨다.

 

이전에 우리가 예수를 거절하고 버리는 능욕의 세력 안에 있었고 긍휼을 입을 만한 조건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불러 내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하셨으며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는 증인으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맛본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산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3 20211031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삶은 자기 주위의 모든 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삶이다.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은 남편을 구원하실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다.

 

주의 인자를 맛본 자는 자신의 악함과 더러움을 맛본 자이다.

그리고 선한 양심은 주의 인자를 맛본 자의 마음에 형성된 양심이다.

믿지 않는 남편을 향하여 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 때에 남편은 아내의 행위와 마음을 통하여 아내의 하나님을 느끼고 의식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남편이든 아니든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사라는 남편의 하나님 앞에 복종된 삶을 살았다.

결국 이삭을 얻고 남편의 기업을 함께 누리는 은혜를 입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지식은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누리게 하는 힘이다.

그 연약함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에 연결되어 있다.

 

침례의 예법에 담긴 의미는 육체의 연약함이나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것에 복종된 마음이고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마음이다.

죄를 그쳤음이라/ 벧전4 20211103

[죄를 그쳤음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불의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놓았다.

 

예수의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정욕과 그로 말미암은 사망이 전부이던 삶에서 죄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다른 영역에 속하는 구원을 이루셨다.

 

이제 그 구원이 마음에 이루어진 자는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는 것과 같은 동일한 마음의 갑옷을 입은 삶을 산다.

 

홍해와 요단강 아래 준비되어 있던 마른 땅을 밟도록 물의 세력을 멈추신 것처럼, 나인 성에 가득한 슬픔과 사망의 세력을 예수께서 멈추신 것처럼, 주의 십자가 고난으로 죄의 세력이 일할 수 없는 영역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죄가 그친, 멈추어 놓은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산다.

 

우는 사자와 같은 대적 마귀는 '그리스도 고난의 갑옷'을 입은 자 앞에서 세력 잃은 허상이다.

십자가 고난에 함께하는 자에게 죄의 세력이 활동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새로운 피조물(고전5:17)에게 부여된, 마땅히 감당하여야 할 몫이고 그 고난 안에 숨겨 놓은 보배로운 세계를 누리게 하는 권세이다.

고난의 증인/ 벧전5 20211107

[고난의 증인]

 

베드로는 자신의 고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베드로를 살리시고 이끄시며 나타날영광에 참예케 하신 고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표면적으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빌라도에 의한 처형으로 나타나 있지만, 내면의 상황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들의 열심에의한 결과이다.

 

예수를 거부하는 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하나님의 법(말씀)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좀 더 구체적인 부분을 설명한다면 하나님과 자신을 아는지혜의 부재(不在)이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의 결핍(눅23:34, 고전2;8)이 예수를 거부하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베드로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는 예수의 말씀을거부한 자신의 패역이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고난으로 몰아간 주역이고 동시에 그 패역에 대한 대속의 대상임을 알게 된 그리스도 고난의 증인이다.

신의 성품/ 벧후1 20211110

[신의 성품]

 

아들에게 아버지의 성품이 유전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 성품의 내용은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그리고 사랑이다.

 

이 아름다운 성품은 아버지를 자세히 앎으로 아들의 마음에 저절로 맺히는 열매이다. (요15:4)

 

예수를 앎으로 얻은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과 그 자녀들의 관계의 시작이고 아버지의 모든 능력과 성품을 공급받아 누릴 수 있는 근거이다.

 

아버지의 성품은 아들에게 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려고 노력하는 자는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다.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택함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벧후2 20211114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이단 교리를 몰래 끌여들여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경고는, 범죄한 천사로부터 시작하여 불의의 삯을 사랑한 발람에 이르는 성경에 이미 예시(豫示)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행태는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라는 잠언의 말씀(잠26:11)을 인용하여 설명되었다.

 

거짓 세력의 중심에 흐르는 사상과 정욕은 없어질 것을 붙잡으려고 진리의 도를 버리는 탐욕에 연단된 마음이다.

 

이 호색(好色)하는 마음은 거룩한 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분별이 없는 짐승으로 비유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7:6)

 

토한 것을 더러워 하지 않는 자가 그것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죄악된 것인 줄 모르는 자가 자신을 신뢰하며 산다.

새 하늘과 새 땅/ 벧후3 20211117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세계를 비웃는 자들,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자신의 성을 쌓는 자들에게 '말세(末世)'는 불편한 진실이다.

 

노아 때 물의 넘침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이번 세상은 불사름으로 역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결정인데, '불사름'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말세'의 심판이 경험된 자들이 있다.

이 세상 죄를 없이 하려고 '세상 끝'에 오신 예수(히9:26)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이다.

 

아담 안의 수천 년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하루에 담겨 심판이 이루어졌고,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세계가 그의 부활과 함께 열렸다.

 

땅을 의지하던 모든 것들이 홍수에 엄몰되고 방주를 의지한 노아와 일곱 가족이 생명을 얻은 것처럼 세상을 의지하던 우리는 십자가 예수와 함께 죽었고 그의 부활과 함께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렸다.

 

마음에 말세가 경험된 자들은 더 이상 '자기 城'을 쌓는 수고로 살 수 없다. 방주되신 예수께 참여하는 수고의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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