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 성경 공부/ 호01 20210627
<음란한 자식>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하나님의 지시와, 그 지시를 따라 가는 선지자의 모습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진의(眞意)를 쉽게 헤아릴 수 없게 하는 하나님의 연출이다.
이 연출 속에 하나님의 인생을 보는 시각과 인생이 인생을 보는 시각의 편차(偏差)가 있다.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창녀의 모습으로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하였다.
행음한 며느리를 징벌하려는 유다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는 판정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유다 자신의 시각과 판단에서 벗어나 다말의 판단에 따른 결과이다.
다말의 결정은 하나님 앞의 다말에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유다도 다말의 결정을 하나님의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었다.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 누구의 모습인가?
특별히 지정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생의 모습이고 그 삶의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호세아의 음란한 아내인 고멜이 낳은 음란한 자식 '로루하마와 로암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이한 구원의 세계가 호세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수요 성경 공부/ 호02 20210630
<내가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호세아 2장은 음란한 여자를 개유(開諭; 알아듣도록 잘 타이름)하여 준비된 의와 은총과 긍휼로 다시 아내를 받아드리는 남편의 이야기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구원을 그려 놓았다.
결코 막연하거나 피상적이지 않은, 절절한 하나님의 계획과 구원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 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사54:6)
이 이사야 말씀보다 더 절실한 것은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라는 말씀에 담긴 남편의 마음이다.
이 남편의 진정과 의지가 음란한 아내에게 준비되어 있다.
결국 남편의 의지는 아골 골짜기가 변하여 소망의 문이 된 것처럼 괴로움과 저주의 관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함께 누리는 관계로 옮겨진 구원을 이룬다.
일요 성경 공부/ 호03 20210704
<음부 된 여인을 사랑하라>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음부 된 여인을 사랑하기 위하여 '타인으로부터 구원'의 댓가로 지불되었다.
화대(花代)가 아니라 생명의 속전(贖錢)이다.
유다의 부끄러운 염소 새끼(창38:20)는 다말에게 화대로 지불될 수 없었다.
다말은 이 땅의 음란한 계산에 끌리는 자가 아니라 유일한 생명수인 예수를 낳는 계보와 그 계획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義)는 창녀와 세리- 마음 중심에 똬리 틀고 있는 가증한 세력을 체감한 심령에게 큰 진동으로 작동한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21:32)
'음부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인'이 아니라 '음부 된, 이미 엎드러진(호14:1) 여인’에 대한 러브스토리가 예수를 통한 구원의 세계이다.
아직 연약할 때, 죄인이었을 때, 원수였을 때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 (롬5:6-10, 딤전2:6)
수요 성경 공부/ 호04 20210707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지식은 깨달음(앎)으로 얻어지는 열매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
'생명'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전7:12)
하나님 신(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혜와 총명과 지식이다.(출31:3, 삼상2:3, 사11:2)
이 세력을 거부한 이 땅은 오직 저주와 사위(詐僞)와 살인과 투절(偸竊)과 간음과 강포하여 피 튀기는 전쟁뿐일 수밖에 없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지식을 맡은 이 땅의 제사장들은 제사엔 관심이 없고 제밥에 마음을 두는(8절, 눅11:52) 형국이다.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잠1:7), 피조물이 피조된 존재인 줄 아는 것이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단2:21)
자신에겐 '지혜가 없다'고 아는 지식이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얻게 한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일요 성경 공부/ 호05 20210711
<음란한 마음>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4절)
음란한 마음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회개로 이끌릴 수 없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음란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음란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하는 마음이다.
한 남편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음란한 여인 마음에는 이미 다른 남편이 만들어져 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예수의 지적은음란한 세력의 정체를 정확히 설명해 준다.
예수께서는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셨고, 말씀대로 자기를 세상에 나타내 보이지만,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말씀 외의 다른 표적을 요구한다.
말씀으로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은 하나님으로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악하고 음란한 마음이다.
아담 안에서 이미 오염된 이 음란한 마음은 하나님의 최선을 거절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님, 생각 속에 만들어진 하나님을 찾아 간다.
수요 성경 공부/ 호06 20210714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를 알자>
우리 인생이 어떻게,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있는지 그 위치를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 열린다.
그리고 얻어맞아 찢어지고 버려진 영혼은 결국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과정에 첫 날과 이틀날 그리고 제 삼일의 여정이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요한복음 1, 2장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고 온 땅을 적시는 비와 같이 만물을 살리는 판정이시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6)
일요 성경 공부/ 호07 20210718
<달궈진 화덕, 뒤집지 않은 전병, 어리석은 비둘기>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은 이들을 치료하시려고 이 세가지 진단을 내리셨다.
제어되지 못하는 욕망과 반쪽 회개와 방향을 잃은 어리석음은 결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선천성 질환이다.
이 하나님의 진단이 믿어진, 사망 선고가 임한 마음에 하나님의 의로운 처방이 준비되어 있다.
수요 성경 공부/ 호08 20210721
<이스라엘이 善을 버렸으니>
이미 선을 싫어하여 버렸다는 뜻을 바꾸어 말하면 지금 惡이 좋아 함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악을 선택함으로 대적에게 쫓김을 당하고 스스로 왕과 방백을 세우고 은금으로 우상을 만들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이 호세아 8장에 기록되어 있다.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선을 버린 사실과 결과가 파멸인 것을 지각하는 일이다.
죄 가운데 태어난 인생이 죄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여 파멸에 이르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음란하기 때문에 패망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하여 파멸에 이른다.(호4:6,14)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렘4:22)
하나님의 구원은 善(하나님)을 버린 상태와 파멸된 상황이 지각된 백성에게 준비되어 있다.
일요 성경 공부/ 호09 20210725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세상 사람들은 타작 마당에 쌓인 곡식과 그 곡식이 자신의 육체를 섬겨 줄 기대로 즐거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곡식을 주신 하나님으로 즐거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할 때(17절), 행음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타작 마당의 곡식은 음행의 댓가로 얻게 된다.
이 더러운 음식은 자신의 혼을 더럽게할 뿐만 아니라(단1:8)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가증한 제밥이다. (호8:13)
광야에서의 포도, 무화과의 첫 열매와 같이 하나님이 즐거워 하신 믿음의 열조들이 있다.(10절)
이들이 즐거이 드리고 하나님이 즐거이 받으신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8:56)
수요 성경 공부/ 호10 20210728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호세아 10장은 "극상품 포도를 심었는데 들포도가 맺힘은 어찜인고?"(사5:2)라는 하나님의 탄식을 기억케 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의 마음에 하니님의 의가 심겨지지 못하고 다른 것이심겨졌을 때, 제단과 柱像에 집착하는 어긋난 이스라엘이 되었다.
義가 아닌 다른 것이면 不義이다.
그리고 불의는 진리를 막는 세력이다.(롬1:18, 2:8, 살후2:10)
불의가 심겨진 곳에 두 마음(나누어진 마음)이 있다.
하나님을 알되...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1-23)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즐거워 하지 못하는 마음은 결국 우상 숭배로 점철된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본질의 회복이다.
썩을 것, 욕된 것, 엎드러진 육의 본성(고전15:42-44)이 지각된마음이 하나님의 의가 심겨질 수 있는 마음이다.
모세를 믿었더면 나를 믿었으리라 (요5:46)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2:13)
일요 성경 공부/ 호11 20210801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이스라엘을 찢으시고 치시는 하나님이 어느 때, 어떻게 긍휼과 구원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는가?
패역한 이스라엘이 결국 하나님의 이끄심과 경고를 무시하기로 작심한 곳,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준비한 反轉의 사역이 연출된다.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과 '영광 받기로 준비된 긍휼의 그릇'으로 설명되는 (롬9:22-23)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사역이다.
패역한 압살롬은 긍휼을 입지 못하였다.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다.
아들을 잃은 다윗의 슬픔은 긍휼을 베풀지 못한 아비의 마음을 보여준다.
저주의 뽕나무에 매달려 있는 삭개로에게 예수님은 외치셨다.
"속히 내려오라!"
그 곳은 예수께서 대신 저주를 받으셔야 할 심판대이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21:23)
패역한 삭개오는 긍휼을 얻었다.
수요 성경 공부/ 호12 20210804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야곱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야곱의 소행대로 벌 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한 벌과 보응의 날이 있다.
야곱의 행복은 자신의 원함에 있지 않았고 벧엘로 이끄시고 거기에서 만나 주신 하나님에게 있었다.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하는 에브라임은 그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
그 어그러진 DNA의 소유자에게 하나님이 제시한 처방은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에 이미 명한 하나님의 규례이다.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일은 야곱과 에브라임과 오늘 우리에게 최선이다.
유월절 어린 양은 여호와 하나님 이름의 實現이고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結晶이다.
일요 성경 공부/ 호13 20210808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이스라엘의 교만은 자신을 도와주는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패망에 이르러 그 불의와 죄악이 확정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 확정된 음부의 권세,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이 구원에 속한 자는 사망이라는 재앙과 파멸이라는 음부의 세력에서 벗어난 자이고 더 이상 그 세력을 용납하지 않는 삶을 산다.
구원의 세력은 뉘우침(後悔)도 용납하지 않는다.
후회는 "그 때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정죄라는 면에서, 자신이 옳은 선택과 옳은 행위를할 수 있는 자라고 여기는 마음에서 형성 된, 여전히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는 마음이고 교만의 소산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는 삶이 있는 것은 육체를 신뢰하는 음부와 사망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영에 인도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롬8:1-10)
만일 정죄함이 있다면, 이는 육체의 생각을 신뢰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재앙과 파멸이 참여하는 자가 된다.
수요 성경 공부/ 호14 20210811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얻은 자, 의인은 하나님의 판정에 의하여 100% 그른 자신을 발견하고 100% 옳은 하나님에 이끌림을 받는 자이다.
의인은 하나님 앞에 입술의 제사에 참여한다.
의인이 유일하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패역으로 엎드러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판결과 입술의 제사이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2절)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시51:19)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5)
저주 받은 패역한 그릇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마치 아버지 없는 자가 아버지를 얻고 그 품을 누리는 구원의 세계이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9절)
지혜와 총명은 인생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품부하시는 세력이다. (단2:20-21)
이 지혜와 총명을 얻어 정직한 하나님의 도를 깨달은 자가 의인이다.
죄인은 스스로 지혜 있다는 자(요9:41)들이고 그것으로 정직한 하나님의 도를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