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음반 성경 공부 노트
6. 성령과 교회
<성령을 받으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그러나 제자 중에 이 말씀을 믿거나 삼 일, 72시간을 헤아리고 고대하며 부활을 기다린 자는 없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면 제자들이 모인 곳의 문빗장을 질러 놓지 않았으리라.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20:19-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닫힌 공간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먼저 평강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부탁하신다.
본 것을 의지하는데 익숙한 인생1) 에게 본 것을 의지하여 형성된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시각과 촉각 등의 감각과 그 감각을 근거로 형성된 생각을 의지한다.
도마의 믿음은 자기 판단의 결과이지 말씀에 다스려진 결과가 될 수 없다.
성령의 이끌림은 '듣고 믿음'으로 된 결과이고 믿음의 실현이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 말씀이 곧 영이고 생명이다.2)
제자들은 들었으나 그 마음에 말씀을 믿는 믿음이 형성되지 못하였다.
제자들의 생각을 따라 만들어진 믿음이 "다시 살리라"는 말씀을 삼켜 버렸다.
예수의 죽으심은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육신의 정욕으로 기울어진 모든 인생의 불의함을 짊어 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 아닌가?
예수께서는 땅에서 들리실 때,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인생의 불의가 드러났고 심판을 받았다.3)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육신의 기울어진 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믿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으라"
숨을 내쉬는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탄식(?)하시며 부탁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말씀대로 부활하셨다.
믿음대로 부활하셨고 성령의 역사 안에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4)
나는 성령을 받은 자인가?
성령이 임한 자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섬겨주신 일을 나타내는 삶을 산다.
그러나 듣지 않는 자, 듣지 못하게 하는 세력에 진 자들은 마태복음 25장의 염소처럼 자신의 한 일의 증거를 나타낸다.
註1)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로새서 2:18]
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3)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4-15]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한복음 12:32]
4)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0]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자기 친자(親子)를 희생양으로 삼으셔서 친자를 대적하고 능욕한 자들을 양자로 입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
이 의부(義父)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이 양자의 마음에 흘러 들어가 지혜와 분별과 능력으로 나타나는 일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일이다.
육체의 욕심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가는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끝내시고 긍휼과 사랑을 입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1)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에 이끌리는 영역으로 옮겨진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육신에 품부(稟賦)하지 않으셨다.
육신을 제어하는 지혜와 능력은 육신에 있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
육체로 육체를 제어하는 수고, 육체의 허물을 육체로 극복하려는 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이 수고는 육신에 머물러 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리스도인이 입고 있는 육체는 사망을 열매 맺는 죄의 도구가 아니라 성령의 일을 나타내는 의의 병기이다.
註1)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이 세상 기독교인들 중에 성도의 삶이 "성화(聖化)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 말은 "거룩함을 얻었다"는 말씀과 대치될 뿐만 아니라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을 욕하는 자의 허언(虛言)이다.
히브리서 10장 10절 말씀인 "거룩함을 얻었다"는 완료된 결과의 기록이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총체적 사역의 결과이고, 이 사실이 믿어진 사람의 마음에 맺혀진 하나님의 권능이며 구원의 확증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한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려진 결과이고 성령의 인(印) 치심으로 "거룩함"을 얻고 누리는 세계이다.
하나님께서 거룩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거룩한 세계를 누리게 하신다.
결코 사람의 의지나 수고가 요구되는 세계가 아니다. 반대로 사람의 의지나 수고가 거세된 곳에서 얻고 누릴 수 있는 세계이다.
양자(養子) 입양이 확정되었는데1), 여전히 양자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이는 정신과 진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거룩하게 된 자가 거룩하려고 노력한다면 거룩한 자가 아니다.
온 몸이 깨끗한(거룩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의 사역은2) 그 거룩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허구의 세력을 씻어주시는 사역이 아닌가?
만일 그 거짓 세력이 씻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 거룩하게 되려 하고 "성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십자가의 원수3) 이다.
오리 사이에 태어난 백조가 어느 날 자신이 백조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 백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백조가 백조 되려는 수고가 아니라 하늘을 날고 있는 백조들과 함께하는 일이 아닌가?
註1)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라디아서 4:6]
2)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요한복음 13:10]
3)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9]
<성도의 삶>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앱4:22-24]
거듭난 성도들에게 유혹과 욕심과 구습(舊習/ 거듭나기 전의 옛 습관)이 남아있다.
뱀의 머리가 잘려도 그 몸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현상이다.1)
구습은 십자가에 죽은 것의 흔적 중 하나이다.
거듭난 성도(聖徒)의 삶은 죽은 것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산 것에 참여하는 삶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 앞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말씀이 함께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입혀 주시는 삶의 옷은 옛 사람을 벗는 자에게 입혀진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5:15]
결국 그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일이다.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9]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과 용납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이 그리스도의 성품이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자들에게 나타난바 되었고, 부름을 입은 자들을 향하여 나타낸 이 성품은 이 성품에 이끌린 자들의 옷이고 능력이 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13:14]
이 하나님의 구원과 구원의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성도 각 사람에게 부어주신 은혜로운 선물인 은사(恩賜)이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이 봉사의 세력은 부름을 입은 자신을 보호하고 부름을 입은 자들을 섬기는 일을 한다.
성도의 삶은 스스로 자신의 거룩함을 견지(堅持)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이와 그 일이 나타나는 삶이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한, 사망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진 결과이고 거듭난 신분이다.
성도의 삶은 거룩함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함을 누리는 삶"이다.
註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12]
<교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옮겨 주셨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6:17-18]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가 하나님의 교회이다.1)
세상과 하나님의 교회를 구분하는 유일한 근거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는냐에 의해 결정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7]
교회의 모양은 있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회개치 못하여 첫 사랑과 첫 행위2) 를 잃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성령이 일하시는 곳이 교회이다.
그 터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위에 세워지는 집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 안에 육신에 속한 세상의 지혜로 세우려는 더러움은 하나님께서 소멸하신다.3)
더럽히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교회는 각 성도의 은사와 섬김을 통하여 교회가 회개하여 거룩함을 유지한다.
만일 교회 위에 아볼로나 바울이나 사람이 세워지면 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가증하고 인위적인 종교 단체이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엡 2:2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 안에 태어난 새 생명은 성전의 한 부분이다.
바울도 베드로도 오늘 태어난 새 생명도 한 부분이다.
서로 귀중하고 보배로운 지체이다.
註1)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전서 1:2]
2)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4-5]
3)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3:16-17]
<성령의 보살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10:30-35]
무엇을 하여서 영생을 얻는 줄 아는 율법사에게 예수께서 제시한 영생을 누리는 장소가 있다.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는 일, 주막으로 옮겨지는 일, 주막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일이다.
이 주막이 교회라면, 교회에 옮겨진 자가 보혜사 성령의 보살핌을 받고 지내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사는 삶이 이 땅에서 누리는 영생이 아니겠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성경 말씀이 증거하는 거듭난 자, 구원을 받은 자는 영생의 영역으로 옮져진 자이다
강도 만난 자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구원을 받았다.
이 길은 모든 인생의 마음에 담겨 있는 두 처소와 영적 상황을 설명하여 준다.
두 처소는 예루살렘과 여리고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예루살렘에 거하고자 하는 마음'과 '여리고에 머물려는 마음'이 있다.
예루살렘에 거하고자 하는 마음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여리고에 머물려는 마음은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마음, 죄의 세력에 다스려지는 마음이다.1)
이 길 위에 있는 자들의 결국은 여리고로 휩쓸려 가 사망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다.
이 길은 '원하는 바 선과 원치 않는 악'을 오가는 왕복 운동의 길이고 육신에 속한 인위적 종교 활동의 길이다.
강도 만난 자의 구원은 이 길로부터의 구원이다.
예수의 형상인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옮겨 놓은 주막은 오늘날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교회이다.
그리고 주막 주인은 보혜사 성령2) 의 형상이다.
교회를 이끄는 보혜사 성령은 옮겨진 자들이 다시 옛 길과 옛 행위로 흐르지 못하도록 보호하신다. 3)
註1)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로마서 7::19-23]
2)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4:26]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