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 화분
Digital graphics,
39.0cm x 26.0cm, 300 ppi,
2013.
1.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가시와 엉겅퀴
결혼한 지 3년이 좀 더 된 어느 날, 나는 벽에 걸려 있던 액자 하나를 떼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급히 방 안으로 들어갔고, 술에 취해 있는 나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응접실 바닥에 나둥그러져 있는 액자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이런 거 왜 벽에 걸어 놓은 거야? 당신을 보나, 나를 보나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인데…!"
처참하게 부서진 벽걸이 액자에는 성경 구절이 적혀있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이다.
결혼 선물로 받았던 이 벽걸이 장식품은 결혼 후 최초로 부서진, 술꾼의 폭력에 의해 순교된 물건이 되었다.
‘허형심(‘許馨心)'
아내의 이름이다. 향내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은은한 난초의 향기를 형용할 때 사용하는 ‘형(馨)’과 마음 ‘심’.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러나 ‘형향(馨香)’만의 아내는 결코 아니다. 술꾼 남편들에 대하여 아내들이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내 기준으로는 싫어하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음주 귀가 때는 늘 한 탕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아내와 싸울 때마다 기억나는 한 사건이 있다.
결혼식 날,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로 기억하고 싶었는데, 신부의 표정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는 신부의 모습은 밝게 웃고, 다소 수줍어 하고, 늘 함께했던 가족과의 이별을 아쉬어 하는 신부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 시간부터 나의 신부는 속상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결혼식이 끝나고 조용히 물었다.
아내는 쉽게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결혼식 사진을 보다가 그 아내의 표정이 그대로 담긴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들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대답은 "장인어른의 운전기사 대접을 소홀히 해서……."이었다.
나의 인생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불길한 예측은 적중하였다.
아내와 자주 다투었다.
결혼 전, 부부싸움을 하는 친구를 보면 참 찌질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판단이 나에게 돌아왔다.
평소 아내가 나에게 잘 대해 줄 때는 이 결혼식 날의 사건이 문제가 될 수 없다. 도리어 그 때 신랑 측에서 일을 잘못한 것이 인정되고, 신부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 된다. 그러나 참 신기하게도 아내와 다툴 때에는 이해가 안 된다.
“이 여자가 결혼식 날부터 그러하더니만……!"
내 마음에 용납하고 싶지 않은 일로 취급하고 만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창3:18>
마치 경작하는 사람이 없는 땅에서 안개만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창2:5-6>는 말씀처럼 생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아담의 육체(땅, 흙)에서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만을 낸다. 가시는 ‘찌르는’, 엉겅퀴는 ‘엉키는’ 일을 한다.
아내가 내게 잘 해주면 엉겅퀴를 낸다.
내게 이런 아내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아내가 내 맘에 안 들게 대하면 가시를 낸다.
싫고, 다투고, 큰소리 치고, 그러고 나서 혼자있고 싶고…….
이것이 내(육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사랑은 없다.
만일 있다면 아련한 추억 속에 있는 거, 잠시 후에 변하는 거, 막연한 원함에 머물러 있고 능력은 없는 엉겅퀴 가짜 사랑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7:16-18>
나는 오랫동안 큰 착각 속에 살아왔다. 나에게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다는 착각 속에서, 좋은 열매도 맺고 나쁜 열매도 맺는 줄 알고 살았다. 원래 성품이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사나운 아내 때문에 다소 폭력적으로 변한 가련한 술꾼으로 여겼다. 착각은 자유롭다.
구스(에디오피아)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렘1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