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에 기호를 세우고
Digital graphics,
50.0cm x 33.4cm, 300 ppi,
2013.
3-4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
먹보다도 더 검은
중국 요녕성 개원(开原)역에 내린 나의 손에 박 아무개라는 청년의 주소가 적힌 쪽지가 들려있었다.
‘경운(庆云)’으로 가는 버스를 찾으나, 쉽지 않았다.
이쪽에서 물으면 저쪽으로 가라 하고, 저쪽에서 물으면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 1994년도 중국 소도시 기차역 풍경은 그러했는데, 버스를 찾다가 형제와 나는 많이 지쳐버렸다.
버스 찾는 일을 포기하고 허기진 배를 위해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중형 버스 하나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아섰다. ‘경운(庆云)’행 버스였다.
기쁜 마음으로 차에 올라 앉았는데, 운전수 아저씨가 우리를 내리라고 한다.
차를 밀어 시동을 걸어 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 앞에 차가 멈춘 이유를 알았다.
배터리가 고장 난 버스를 세 차례나 밀며 가며 우리는 간신히 경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청년은 집에 없었고 모친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저녁에 마을 교회 집사님들과 교제를 갖고 주일날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음 날, 나는 60여 명이 모인 예배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을까……? 뒤쪽 문이 열리며 한 부인이 들어와 빈자리에 앉았다.
걷는 모양이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웃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보는 듯 한 미소?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방금 내가 전하는 말씀의 내용은 율법에 관한 말씀이었다.
어제 저녁 집사님들과 교제를 시작할 때 확인할 수 있었는데, 모두들 율법을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신앙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율법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부인은 자꾸 웃었다.
“웃음이 나와야 될 상황이 아니라 긴장해야 할 시간인데……, 이 부인은 정신이 좀 약한가 보다.”라고 생각이 되어서 신경이 좀 쓰였다.
예배당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마칠 때 이미 한 시간이 넘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지고 또 한 시간 동안 복음을 전했다.
히브리서 10장 내용으로 말씀을 정리하면서 듣는 분들에게 물어 보았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나도 거룩합니다”<히10:10>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듣는 분들 중 대부분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기쁨으로 화답하였다.
그리고 예배당은 다소 들뜬 분위기가 되어서 서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때, 그 부인이 강대상 앞으로 다가와 내게 말했다.
“선교사님, 제게 안수 기도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몸이 불편해 보이는 부인을 의자에 앉히고, 기도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몸이 어떻게 불편한지……, 어떤 믿음의 신앙을 하는지……, 특히 하나님 앞에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지를 물었다.
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 해 주었다.
부인은 십 년 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이 곳 경운에서 살게 되었다.
시집 살림이 어려워 농사 일로 많은 고생을 하다가 형편이 조금 좋아질 즈음에 병마가 찾아 왔다.
사 년 전 류풍습(类风湿;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심하여 일도 하기 어렵고 거동이 불편하여 고통스러웠는데, 더욱 고통인 것은 사람 때문에 받는 고통이었다.
병원 진료는 고사하고 변변한 약 한 봉지를 사오지 않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섭섭함이 서글픔으로, 서글픔이 노여움으로 자라났다.
병세는 점점 중하여졌다.
주위 이웃들의 위로하는 말 가운데, 예수 믿으면 병이 낫는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예배당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교회에서 신앙 학습을 받았는데, 매일 십자가 앞에 죄를 고백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임하면 병이 낫는다는 강사 목사의 말을 듣게 되었다.
부인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교회에 나갔다. 주일 예배, 새벽 기도회, 성경 학습에 참석하였다. 특히 매일 죄를 고백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삼 년 쯤 되었을 때, 신앙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병이 낫지 않아서 마음에 힘을 잃었고, 특히 남편과 시어머니가 싫어하는 종교 생활이라서 더욱 그랬다.
하루는 새벽 기도 시간에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하는데, 남편과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한 죄를 고백할 때, 갑자기 눈물이 나고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기도가 끝났을 때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죄를 사해 주셨다고 여겨지면서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안해졌다. 뿐만 아니라,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미운 마음도 사라지고 도리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참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는데, 남편을 보는 순간 그 모든 평안함, 즐거움, 기대, 소망은 다 사라졌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자기를 기다린 남편의 쌍욕과 구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남편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용서가 아니라 죽이고 싶었다.
이제는 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도 할 힘을 잃었다.
“나는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라는 절망만 마음에 가득 차게 되었다.
결국 이 부인은 삼 년 만에 종교 생활을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정적인 일이 있었는데, 교회 안에 집사님들이 자기가 예배당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가 집사들의 지적이다. 불편한 거동으로 몇 년을, 그것도 매일 예배당을 출입하는 부인을 보고 예배당 주위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 믿어도 소용없네…….”라며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이다.
부인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신앙도, 건강도, 가정도……, 죽음 외에 다른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새봄이 왔다. 여전히 아픈 몸이지만 밭에 나아가 풀을 뽑았다.
풀을 뽑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흥얼대며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한없이 공감되는 찬송이었다.
씻어도 씻어도 씻어지지 않는 죄……, 삼 년간 신앙 속에 경험한 전부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이 사실이 믿어지도록 도와준 사람들이다.
먹(墨)이 깨끗하게 희어질 수 없는 물건인 것처럼, 부인의 마음도 시커먼 죄가 끊임없이 피어나는 먹통과 같은 물건인 것이 인정이 되었다.
몇 번을 흥얼대며 이 찬송가를 부르다가, 어느 순간 부인의 마음을 때리는 듯한 성각(醒覺)이 있었다.
“흰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하게 씻겼네~”
이 가사의 말씀이 믿어졌다.
“맞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것은 이 먹보다도 더 검은 죄를 위한 거다!”
부인은 너무 너무 기뻤다. 남편을 미워하는 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먹통 같은 마음의 모든 죄를 위해 심판을 받으신 사실이 믿어졌다.
너무 기뻐서 외치고 싶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밭에서 예배당으로 뛰어 갔다. 부인 자신도 어떻게 뛸 수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곧 실망하였다. 집사님들이 부인의 말을 듣고 별 반응이 없었다. (집사들 중에는 이 ‘먹보다도 더 검은 죄’의 세계를 경험한 분이 없었는가 보다)
“은혜 입었구먼…….”이라는 말이 전부였다.
부인은 집사님들이 같이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이거 별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좀 실망이 되었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였다.
어제 저녁에 열 살배기 딸아이가 저녁 늦게 돌아와 엄마의 손을 붙들고 다짜고짜 말했다.
“엄마, 나 죄 사함 받았어!”
“박 씨 삼촌 집에 선교사님이 오셨는데, 량천 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대…….”
“그리고 내일 주일 예배에도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해 주신다고 했어.”
부인은 딸아이가 하는 말 속에 뭔가 번쩍하는 느낌을 받고 몇 달 동안 다니지 않았던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딸아이는 내가 집사님들과 교제할 때, 한 쪽 구석에 앉아 있던 아이였다.
부인은 좀 늦은 시간이 예배당에 도착하여 내 눈길을 쏠리게 하였다. 그리고 잠간 동안 강사의 말을 들으면서 반가운 손님을 맞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강사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경험 한 ‘먹보다도 더 검은’ 인간의 마음의 세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다 듣지 않았지만, 그 다음에는 ‘흰 눈보다 더 희게 씻겨진’ 세계를 이야기할 것으로 기대하며 말씀을 들었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였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이 부인 자매의 간증을 들으면서 큰 감동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막5:25-34>의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 내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사실!
성경 속의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절망 가운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마음에 믿음이 임하였는데, 이 부인 자매는 찬송가를 부르다가 십자가의 믿음이 마음에 세워졌다.
나는 부인 자매와 함께 주께 감사한 기도를 드렸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