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시와 무지개 빛
Digital graphics,
22.4cm x 29.9cm, 300 ppi,
2013.
4-5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이야기
만족
1996년 12월 중순, 진눈깨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커브 길에 차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1차선에서 차가 중심을 잃고 중앙 분리대 쪽으로 붙는가 싶더니, 차 머리가 분리대에 부딪히면서 차가 빙글빙글 돌아 도로 좌측 가드레일에 충돌하면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천안순천향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왼쪽 5개 늑골과 겹갑골이 골절되었다. 그리고 몸통 충격으로 피를 토하고, 늑막에 고인 물과 피를 옆구리에 관을 박아 뽑아내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주의 위로를 구하였다.
다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뚜렷해지는 사실이 있었다.
첫째는 나를 살려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은 나를 살려 놓으셨다. 내 생명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그 후에 좋은 일이 있으면, “이런 세계를 누리라고 살려 놓으셨는가 보다……, 참 감사하다.”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렇게 어려워하라고 살려 놓은 것은 아니겠지?”하고 다시 하나님께 묻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사의 순간에 반응한 나의 모습이다.
특별한 계시나 환상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두렵지도 않았고 즐겁지도 않았다. 다만 사고 순간, 그리고 정신을 잃고 깨는 시간에 골절 부분에 큰 통증으로 신음이 터져 나왔고, 습관을 좇아 “아버지!”를 부르며 마음을 추스르려 하지만, “하나님, 좀 신사적으로 말로 하시지……, 이렇게 물리적으로 하셔야만 합니까?”하는 원망과 “나는 이런 쭈그러진 꼬락서니로 드러나는 내 모습이 싫다!”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응급실에 누워 있을 때, 옆에 있던 환자가 죽어 실려 나갔다.
자살하려고 농약을 마신 환자였는데, 실려 와 있는 동안 몇 차례 “아이, 뜨거워.”하며 고함을 치며 괴로워 하다가 죽었다.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었는데, 미국 칙출판사(Chick Publications)에서 발간한 만화에서 보았던 똑같은 상황이 내 앞에 연출되어서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만화의 내용 중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돌발 사고로 죽게 되었는데, 응급실 병상에서 죽기 전에 한 차례 회생하여 지옥 형벌의 고통을 나타내는 장면이 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상기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 옆에 또 다른 환자가 있었는데, 이미 다리 한 쪽을 절단한 상태이다. 그러나 정신이 맑고, 자주 간호사를 부르고 이야기를 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 분께 말을 걸었다.
“어떻게……, 수술을 받으셨네요?”
“예……, 다리뼈가 썩어 한 쪽 잘랐는데, 나머지 한 쪽도 잘라야 하는지……, 의사 선생님과 상의 중이에요.”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남의 이야기하듯이 쾌활한 어조로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 분께 복음을 전했다.
간호사들이 와서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눈짓, 몸짓을 하고 간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절대’는 하나님의 소유다.
복음은 누워서도 전할 수 있다.
간호사의 눈치를 보며 한 시간 정도 말씀을 전해줄 수 있었다. 놀랍고 감사한 시간을 허락받았다.
그 분이 복음을 받아드리는 일도 감사하지만, 내 마음을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은혜가 정말 감사하였다.
바울이 빌립보의 깊은 감옥 안에서 찬미할 수 있었던 그 찬미의 세계가 이런 것이라고 여겨졌다.
마음에 큰 쉼이 오면서, 돌이켜 사고의 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판관 포청천(包靑天)의 이야기 속에, 황족의 형벌에 사용하는 용(龍)작두, 탐관오리를 벌하던 호(虎)작두, 평민의 죄를 다스리던 개작두로 구분되는 형틀이 있다. 살인과 조작과 사기로 임금의 사위가 된 사람을 포청천은 ‘개작두’로 처형하라는 명을 내리는데, 당사자는 ‘용작두’에 죽겠다고 애원하는 우스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 나는 이렇게 처참한 상황 속의 모습 말고, 그럴듯한 영적인 상황 속의 모양……,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 ‘개작두’에는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의 소유자이었다.
거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육의 세계’에 대한 경험은 오늘도 내 마음에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요3:6> 육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없다. 죽는 순간에도 ‘자기 세계’를 세우고 포장하는 일을 쉬지 않는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세계이다.
‘회칠한 무덤, 평토장한 무덤’은 외식된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에게만 적용된 예수의 말씀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무덤과 같은 자신의 ‘육’에 대한 감각과 분별이 없다면, 자신을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또는 썩은 송장 냄새를 뿜어 대는 ‘육의 세계’가 없는 것처럼 평토장한 무덤의 삶을 살게 된다.
이 교통사고로 얻은 또 하나의 흔적이 있다.
예수님도 옆구리에 창흔이 있고, 나에게도 옆구리에 상흔이 있다. 예수님의 것은 나를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신 흔적이고, 나의 것은 병원 응급실에서 끝까지 살아 보겠다고 노력한 흔적이다.
이 극한 대조가 나에게 큰 만족이 되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얻은 흔적과 닮은…….
야곱은 여전히 절뚝거리며 살지만, 벧엘의 약속은 여전하다.
인생이 이 땅에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만족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모든 인간의 DNA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도록 배열되어 있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전 1:8>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 5:10>
음부와 유명(幽冥)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잠 27:20>
육에 속하여 육을 따라간 인생의 결과는 음부(陰府, Hades, Sheol: 죽은 자의 거처)와 유명(幽冥: 깊숙하고 어두움)이다. <시9:17, 49:14>
사람들이 이 만족할 수 없는 영역에서 만족을 구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수고와 슬픔’이다. <시90:10>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고 계신다. 이 육에 대한 뚜렷한 분별은 생명과 만족이 있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잠 15:24>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적이고 육신의 생각에 머물기 원하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고, 때로는 물리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시는 일을 나타내신다.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잠 23:14>
그러니까 진정한 만족은 ‘영역’에 의해 결정된다.
‘육에 속한 인생’의 영역에 있느냐, ‘전능과 최선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섬겨주신’ 말씀과 언약의 영역에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이다.
캐나다 소녀 애슐리 헤기(Ashley Hegi,1991-2009)는 17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조로증(早老症, progeria)은 유전자 이상으로 나타나는 병인데, 평균 수명이 13세 정도가 되는 희귀병이다.
애슐리는 이 질병의 환자 중 꽤 오랜 시간을 이 땅에 머물렀지만, 18번째 생일을 한 달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애슐리가 남겨 놓은 이 말은 오늘도 세상을 감동케 한다.
“내가 프로제리아라는 질병에 걸린 것은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눈물겹도록 자랑스러운 우리의 애슐리…….
이 땅에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18세 소녀의 삶은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