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같은 것들
Digital graphics,
50.1cm x 20.8cm, 761 ppi,
2013
4-6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이야기
아버지
일 년만에 아버지를 다시 뵈었을 때, 집안 분위기가 많이 어두웠다.
절을 올리고 아버지 앞에 마주 앉았는데, 아버지께서 집안 형편을 이야기 하셨다.
근간에 돈을 사기 당해 금전적으로 어려운 사정을 말씀하셨다. 원래 말씀이 없으신 분인데, 무겁게 입을 여셨고 도움을 청하셨다.
나는 그 시간 지혜롭지 못했다. 부모님의 어려움을 십분 이해하고, 함께하는 자식의 모습으로 아버지께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아버지, 이제 제 이야기도 좀 들으세요, 교회에도 좀 나가시구요.”
나의 이 한마디 말은 아버지를 매우 격노케 하였다. 그때까지 마음에 눌러 놓으셨던 나에 대한 섭섭함과 답답함이 큰 노여움으로 터져 나왔다.
사태는 아주 심각하였다. 아버지의 호통 속에 들려진 나에 대한 분한 마음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결국 아버지께서는 부자간의 인연을 끊자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을 때, 나도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슬그머니 화가 났다.
“아버지, 어떻게 아버지께서는 부자 관계를 마음대로 끊고 붙이고 하십니까? 좀 잘나도 아들이고 못나도 아들 아닙니까?”
아버지께서는 듣기 싫다는 호통과 함께 밖으로 나가셨다.
아버지 앞에 처음이자 마지막 다툼이었다.
내 마음은 암담하였다. 아버지보다도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컸다.
“이런 자가 어떻게 부모님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하는 자책과 나의 뼈 속까지 스미어 있는 교만이 한바탕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힘들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오면서 마음에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었다.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사51:1>
‘우묵한 구덩이…….’
그 속에는 어두움과 축축함, 그리고 빛을 싫어하는 버러지의 꾸물거림이 있는 곳이다.
나의 본적(本籍)이다. 하나님은 그 곳에서 나를 떠냈지만 부모님은 아직 그 곳에 계신다.
중국으로 돌아와 일 년을 지내면서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형식적인 통화를 한두 번 한 것 같다. 다시 아버지 얼굴을 뵈어야 할 시간이 되면서 마음이 부담스러웠다.
일 년 동안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부모님을 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확인 되었다. 금전적으로, 마음으로 도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가 연상되었다.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말씀이 있었다.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방울, 한 석류, 한 금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갈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출28:34,35>
석류와 방울은 예수와 복음의 상징적 형상이다. 제사장이 일을 할 때마다 금방울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처럼, 복음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면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 내게 크게 들려졌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죽어있던 내 마음이 소생하였다.
부모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나는 성경을 들고 집을 나섰다. 선교사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이 감사했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인데, 자식의 사정을 왜 모르시겠나 하는 믿음이 내게 큰 안위를 주었다.
부모님이 낳은 여덟 자식 중에 이미 여섯은 부모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여덟 자식 중에 하나가 제사장이 되어서 금방울 소리를 내는 삶을 산다.
일 년 만에 다시 초인종을 누를 때, 내 마음은 여전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문이 열리면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표정과 나를 반기는 모습은 4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최초의 정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절을 올리고 앉았을 때, 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면서 말씀하셨다.
“니가 배 한 상자와 40만원 보내줘서, 그 돈으로 보일러 기름 넣고 이번 겨울 따뜻하게 보냈지…….”
“아버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뭘 보낸 적이 없는데요.”
“니가 아니면 누가 보냈겠니…….”
아버지는 아버지고 아들은 아들이다.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사함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누가 보냈는지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하니까…….
“지난 일요일에는 니 어미와 교회에 갔었다.”
아버지는 내게 마음을 활짝 여시고 즐겁게 말씀하셨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네 교회는 안 간다던 아버지께서 마음이 바뀌어 나를 맞이하기 전에 준비한 선물의 말씀이었다.
배와 돈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였는가?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받으셨다.
아버지께서 복음 전도 집회에 참석하셨다.
첫째 날 저녁, 집회 말씀을 듣고 오신 아버지께 물었다.
“어떠셨어요?”
“강사라고 하는 목사, 좀 저질이더라.”
유교적인 아버지께서 자유분방하게 전하시는 강사 목사님의 말씀에 좀 거슬렸던 부분을 이야기 하셨다. 그래서 나는 많이 긴장되었다.
“그래도 저 분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인데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계속 집회 말씀을 들으셨다.
집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께 또 물었다.
“아버지, 죄 사함 받으셨어요?”
“그래, 예수께서 다 짊어지고 가셨어.”
“그럼 아버지도 하나님 나라에 가시겠네요?”
“다 해 놓았더구먼…….”
‘다 해 놓았더구먼’
추수 날의 얼음냉수와 같은 이 한 마디는 오늘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 자동차도 함께 즐거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