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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Digital graphics,

45.0cm x 60.0cm, 300 ppi,

2013.

4-1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이야기

 

 

육체의 가시

 

 

와신상담 (臥薪嘗膽)이라는 말이 있다.

섶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 시대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에게 복수할 것을 맹세하였고, 부차에게 패배한 구천은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섶나무와 쓸개는 원수를 기억하게 하는 고통과 자극제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부차는 부드럽고 포근한 침대가 아니라 쌓아 놓은 장작더미를 침대로 삼아 그 위에 매일 밤 누우면서, 하루 밤이라도 몸이 편하면 부왕의 원수를 잊는 반역으로 여기는 삶을 살았다.

구천도 매일 쓸개를 핥으면서 하루라도 원수에 대한 원한이 희석될까봐 스스로를 자극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이 ‘와신상담’이라는 말의 의미에서 원수를 갚거나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는 비유적인 뜻이 있고, 이면(裏面)에 담겨있는 의미로는 원수에 대한 원한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희석되고 무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성경 속에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섶나무와 쓸개 비슷한 물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섶나무와 쓸개는 육체가 싫어하는 물건이지만, 이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의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리고 이 고통은 하나님을 찾게 하고 얻고 누리게 해 준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12:7>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 고통스런 세계를 허락하셨다.

퓨즈(fuse)가 과전류로부터 가전제품을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바울의 신앙을 보호해 주시려고 ‘교만 방지 장치’를 해 놓으셨는데,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使者)’라고까지 명한 이 물건과 이 세력에 대한 감각이다.

바울은 이 세력으로 인한 고통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세 번이나 간절히 하나님께 구하여 떨쳐 버리고 싶었던 이 물건의 구체적인 정체는 무엇인가?

 

이는 모든 인생의 타고 난 성품 속에 존재하는 세력이다.

이 세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한다.

 

사사기 9장에 여룹바알(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칠십 인을 죽이고 세겜 사람들 앞에 스스로 왕이 된 이야기가 있다. 형제들의 죽음에서 유일하게 피한 말째 요담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세겜 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의 행태를 ‘가시나무’로 비유하여 고발하였다.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왕이 되라 하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삿9:8:15>

 

이 ‘가시나무’의 교만은 사단으로부터 온 세력이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사 14:13>

 

‘가시와 사단’의 세력은 스스로를 지혜롭고 옳게 여기는 마음, 자존심, 스스로 왕 된 마음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교만은 모든 인생의 육체에 존재하고 활동한다. 바울에게만 있는 세력이 결코 아니다. 다만 바울에게는 이 세력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이 세력이 활동할 때마다 고통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이 감각은 의인들에게 허락된, 생명을 얻고 누리게 하는 영적 감각이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점하는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났다.

“이 사람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그녀는 외쳤고, 바울은 심히 괴로워했다. 여러 날 고통하다가 결국 바울은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냈다. 이 일 덕분에(?) 바울은 많이 맞고 깊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무엇이 바울을 괴롭게 하였는가?

귀신의 소리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외친 내용 때문인가?

어쩌면 육신의 안위에 머물게 하는 사단의 음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울, 네가 저 귀신 들린 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면, 너는 반드시 그 여자의 주인의 고발로 관원에 잡혀가게 될 거야. 그리고 너는 많이 맞고 그 끔찍한 지하 감옥에 던져질 것이 분명하다. 귀신의 소리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냥 잠시 조용히 있어, 일 내지 말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

 

사단은 오늘도 의인의 마음을 높이는 일을 한다. 구체적인 작업은 자신의 생각을 신뢰하게 하고 그 육신의 생각에 머물게 한다. 육신의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 교만하다”라고 말해도 전혀 틀린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다 교만하다. 배만 조금 불러도 교만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호13:6>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도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바울에게 ‘교만 방지 장치’를 베푸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셔서 육체에 머무는 삶에 대한 경고와 경고에 반응하는 감각을 주셔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삶으로 이끄신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12:1-9>

 

참된 신앙은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가 제거되고 그 세력이 나타나지 않는 세계가 아니다.

신앙은 이 육체와 사단의 세력으로 인한 통증과 이 세력을 스스로 이길 수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인도함을 받는 일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18:1>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저희는 나보다 힘센 연고로다

저희가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시18: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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