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같은 것들
Digital graphics,
70.0cm x 23.1cm, 300 ppi,
2013.
1-3.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지성(至誠)
40년간 절엘 다니시며 불공을 드리시던 어머니께서 종교를 바꾸셨다.
자타가 공인하는 ‘보살’의 삶을 접고, 일요일마다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향하신다.
이유는 '아들을 위하여' 이였다.
마흔의 다 된 아들이 갑자기 중국으로 선교를 떠났고, 아들의 권고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스스로 아들의 종교와 함께하기로 결심하셨다.
종교적인 습관에 익숙한 어머니는 매일 성경을 읽고 찬송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내셨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어머니는 신앙의 근거를 여기에 두신다. 다른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머니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풀어 설명해 드리지만, 이미 오래 동안 굳어진 어머니의 종교적 관념은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기에는 너무 견고했다.
지금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는 예수가 어머니 마음에 있다. 이전에는 이 마음에 부처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께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어머니는 예수를 믿는 분이 아닙니다!"
황당하고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시며 어머니는 말씀 하셨다.
“무슨 소리야, 나는 예수님 믿는다. 네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으려고 이 곳 중국까지 왔는데…"
“어머니, 예수를 믿은 사람은 그의 하신 말씀과 그의 하신 일이 믿어진 사람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어머니 마음에 선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조금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거짓말 하시는 분인가요?"
어머니께서는 대부분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을 거부한다.
하나님이 인생을 보실 때,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고 <창6:5>,
인생 중에 지각이 있는 자나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시14:2-3> 고 하신다.
이 사실은 죄악 된 인생이 거룩한 하나님의 세계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결정적인 정보, 생명을 얻게 하는 정보다.
만일 이 내용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이 지식이 없는 마음에 예수가 세워질 수 없다.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에 진심(眞心: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이 있다고 믿고 계시고 그 진심을 신뢰하시는 분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베드로의 진심은 예수님 앞에서 사단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마16:23, 26:34>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 흐르고 있는 진심의 정체와 그 진위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기준 앞에 판정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판단에 복종 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쟁점은 어머니의 종교적 관념과 열심(자기 의)에 대하여 이 제사를 받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에 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다<롬10:2-3>는 말씀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머니의 침대 머리 위에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판정을 큰 글씨로 프린트해서 붙여 놓았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마15:19-2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렘17:9>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3:4>
복음 교제는 계속되었다. 80세가 넘은 어머니께, 나와 아내 그리고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 말씀을 전해 드렸다. 교회의 존재와 고마움을 많이 느끼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하루에 한 두 번씩 말씀을 전해드리는 일에 어머니께서 많이 부담스럽고 힘들어 하셨다. 당신의 의견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거부하셨다. 평소의 자상한 성품이 하나님 말씀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 날아가 버렸다. 복음 교제가 아니라 다툼 교제가 속출하였다.
우리에게 인내도 없었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였다.
어느 날 어머니의 입에서 이 전에 들을 수 없었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속에 뭐가 있긴 있는가 봐…. 하나님이고 말씀이고 뭐고 왜 이렇게 싫은지…."
상스러울 정도로 거친 하나님에 대한 반응, 불만이 가득 찬 어머니의 태도, 그러나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나는 기회를 얻었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의 분한 마음을 어머니 앞에 펼쳐 보여드렸다.
참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가인의 형상을 통하여 가려져 있던 자신의 형상이 비춰질 수 있었다.
하나님을 향하여 안색이 변하고 분해 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열심이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은 그 출처가 다르지 않다.<롬7:21> 동일한 가인의 마음이다. 만일 가인이 정성을 드리지 않고 열심도 없었다면 안색이 변할 만큼 분하여 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의 성실과 열심(땅의 소산)을 원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정하심(양의 첫 새끼와 기름)에 대한 순종을 원하신다. <삼상15:22>
그러나 가인 자신의 옳은 기준은 하나님의 정하심을 무시하기에 충분했고, 그 열심은 아벨을 죽이는 일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죄악의 근거는 그의 행위(성실, 불성실, 열심, 나태 등)에 있지 않고, 자신의 제사가 하나님의 정한 제사보다 옳게 여기는 마음에 있다. <요일3:12>
어머니께서는 사람의 정성을 무시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를 통해 말씀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판정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성실한 사역을 맛보게 되었다.
어머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종이에 적어 가면 교제한 내용을 어머니께 드렸다. 적어 놓은 내용을 보고 또 보면서 어머니께서는 참 평안해 하시고 감사해 하셨다.
* 가인의 제물
= 땅의 소산 = 가인 수준의 제사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 하나님이 받을 수 없는 제사
* 아벨의 제물
= 양의 첫 새끼와 기름 =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 (예수님이 우리를 섬겨주신)
= 하나님이 기뻐 받으신 제사
* 동생을 죽임
= 하나님의 정하심에 대한 거부
= 자기가 하나님보다 옳음
* 하나님의 사역과 구원
= 가인의 성실과 열심의 결과를 드러냄 <롬10:2-3, 유1:10-11>
= 구원의 표(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주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오,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