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략질하는 이리/ 마7:15-20 20221012
성경은 '모든 죄'를 사하셨다고(골2:13) 하지만 아직 처리가 되지 못한 죄가 있다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가 있고,
성경은 "거룩함을 얻었다"(히10:10)라고 성취된 구원을 전하는데, "거룩해져야 한다"라고 아직 성취되지 못한 구원을 가르치는 거짓 선생이 있고,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만 육신의 행위에 연루된 인위적인 종교 활동을 강요하는 거짓 목자들이 있고,
성령의 일을 사람이 대신 감당하려는 거짓 교회가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거짓 세력의 외모는 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광명의 천사로, 그리스도의 사도로, 의의 일군(고후11:13-15)으로…….
이 세력은 이간질하여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과 자유를 약탈하는 일을 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과 자유는 좋은 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힌 자들의 마음에 맺힌 열매이다.
노략질하는 이리는 오늘도 양의 모양에 치중한다.
그리고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므로(고후11:4) 가시와 엉겅퀴 숲과 같은 다툼과 얽매이는 삶의 열매를 맺게 한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다른 복음', 나쁜 열매이다.
그리심산과 에발산/ 신11:26-30 2022100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에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면 복을 누리고 듣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좇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렸고 에발산의 저주가 그들을 덮어버렸다.
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렘3:2]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과 열심은 적신으로 드러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심산의 축복을 성취하고야 만다.
이스라엘의 패역이 드러난 곳, 에발산의 저주 위에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었다.
너희는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 소리를 높여 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사13:2]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사41:18]
결국 에발산의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세력으로 덮혀지고 이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의 힘을 경험한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심산의 축복을 누린다.
젖과 꿀을 먹고 마시는 안식의 세계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구원의 세계이다.
이단(異端, Heresy) / 딛3:10-11 20221005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다시 확인하면서[딛3:3-7] 그 은혜를 힘써 누리라는 권고와 덧붙여 경계의 대상을 지목하였다.
이단(異端, Heresy)의 헬라어 어원은 '스스로 취하고, 택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한자어 異端이 '끝이 다르다'는 뜻인 것처럼, 어느 누구도 정죄할 것이 없는 영역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죄하는' 결과를 택한 자가 곧 이단이라고 디도서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인에게 예수가 이단이었다. [행24:5]
사정은 오늘날도 같다.
특히 기독교 내에서, 정통 교회로 자칭하는 교회에서 자신의 정통 교리를 주장하면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 중에 하나가 이단이다.
사실은 정통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다른 결과에 이른 자가 이단이다.
만일 정통 교회가 말씀과 다른 결과에 이르게 한다면 이 조직은 이단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정죄하며 죄를 짓는 자'은 율법 아래 종교 활동 중인 종교인이다.
'스스로 정죄하며 죄를 짓는 곳'에 머물러 있는 종교인의 시각으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곳'[롬8:1]에 이르렀다고 외치는 신앙인은 이단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아 본 적이 없는 자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은 자들을 향하여 이단이라고 한다.
자신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얻은 구원이 아니면 자신의 옳은 행위에 매인,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는 죄인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딤전1:3-11] 20221002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이 아담에게 임하였을 때, 이 법은 아담 안에 있는 '법을 무시하는, 복종치 아니하는 세력'을 드러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인 아담을 위하여 세상 끝에 마지막 아담을 보내시고[고전15:45],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자들의 공동체이다.
디모데전서는 에베소 교회 안에 거짓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는 율법을 가르치려는 거짓 교사들에게 바울이 설명하여 주는 하나님의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이었다.
율법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고 14가지로 열거한 불법한 죄인을 위하여 입법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옳지 않은 자신 구원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5]
옳지 않은자, 죄를 이길 수 없는 자를 위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오르셨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딤후2:11]
죄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의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는 하나님의 복음이 복되고 감사하다.
단번에 주신 믿음/ 유1:1-4 20220928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주신 '믿음의 도'는 성도를 지키는 세력이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지혜이다.
이 믿음은 단번에, 한차례 주신 믿음이고, 죄인을 의인의 영역으로 옮긴 강력한 힘이고 의인의 삶을 지키는 보장이다.
[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러나 이 복되고 아름다운 은혜의 세계를 색욕거리로 바꾸려는 '가만히 교회 안에 들어온 세력'이 있다. [갈2:4, 벧후2:1]
교회의 내부에서 가만히 형성된 이 세력의 역할은 결국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일[히10:29]이다.
교회 안의 거짓 목자는 거룩함을 입은 성도의 기쁨을 돕는 일이 아니라 성도의 믿음을 주관[고후1:24]하려 한다.
결국 교회 안에 용납될 수 없는 육신의 세력과 복음을 빙자한 법의 굴레 아래 성도들을 몰아 간다.
성령의 일을 자신이 대신하려고 하는 이들은 '애찬의 암초, 몸만 기르는 목자, 뿌리 없어 열매 없는 가을 나무, 수치를 뿜어대는 물결이고 흑암에 해매는 유리하는 별이다.
이 악한 세력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자를 통해 일을 하며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자는 이미 단번에 주신 거룩한 믿음을 저버린 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는 자들의 마음에 일하시는 성령께서 단번에 주신 믿음을 보존하여 주신다.
좋은 땅/ 마13:3-9 20220925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의 마음이 '좋은 땅'으로 비유되어 있다.
그러나 길 가, 돌밭, 가시떨기 땅을 덮고 있는 악한 세력은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한다.
사람들의 발로 다져진 길 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에 의해 먹히고,
흙이 얇은 돌밭에 뿌려진 씨는 뿌리를 내릴 수 없어 환란과 핍박이 오면 말씀의 힘에 이끌릴 수 없고,
가시떨기 땅에 떨어진 씨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을 인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를 저버리는 사망의 결과에 이른다.
이 세 종류의 땅은 아담 안의 모든 인생의 형상과 결과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인생 중 '좋은 땅'으로 태어난 자는 없다. (시53:2-3)
새와 돌과 가시떨기가 없어야 좋은 땅이 아니라 이 악한 세력을 충분히 처리해 줄 농부가 있는 땅이 좋은 땅이다.
만일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악한 세력에 덮혀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면 농부를 구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갖지 아니겠는가?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30:18)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민16:41-48 20220921
땅이 입을 벌려 고라와 그에 속한 모든 사람과 물건을 삼키고, 여호와로부터 불이 나와 고라와 함께한 이백 오십 족장들을 소멸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운 모세와 아론을 거스린 저주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또 다시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방금 눈 앞에 펼쳐진 하나님의 진노의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대적한다.
여호와께서 이 대적의 백성을 멸하려 할 때 아론은 향로를 취하고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였다.
멸절되어야 할 백성과 소멸하실 하나님 사이에 아론이 섰을 때,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다.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사48:4, 9)
세상의 소금/ 마5:13-16 20220918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은 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가진 제자에게 “너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천국 복음은 예수의 음성을 왕의 음성으로 듣고, 배워 알게 되고, 누리는 자를 위한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용해되어 자신이 소금인 줄 알게 된다면 짠 맛을 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다.
소금의 짠 맛이 사람의 입에서 타액에 의해 용해되면서 생겨난 맛인 것처럼, 말씀에 젖어 용해된 마음을 향하여 하나님은 “너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신다.
이 짠 맛은 하나님의 미각에 의하여 결정되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기뻐 받으시는 맛이다.
하나님의 받으시는 것은 소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짠 맛을 내려는 인위적인 수고가 아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복종된 반응이다.
사마리아 수가 여인(요4:)은 예수의 음성을 들으면서 비로소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고, 이전에 없었던 '맛'을 나타내었다.
예수께서도 그 맛을 보았고 마을 사람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 앞으로 인도되었다.
이 여인에게서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을 읽어 낼 수 있다.
하나님과 맘몬/ 마6:24 20220914
맘몬(Mammon, 헬;맘모나스/ 재물, 돈)은 의인화 된 '부(富)'의 형상이다.
그리고 이 ‘富의 성취’는 오늘날 이 세상 모든 인생의 로망일 것이다.
자신의 부를 실현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스스로 택한 신(神)이 있다면 그것이 맘몬이 아니겠는가?
만일 이 땅에서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고 하나님을 택하였다면 그 하나님은 재신(財神)이고 맘몬이다.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누리려는 마음으로 예수 앞으로 달려 온 청년(마19:16-)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재물을 택하는 마음으로 물러 갔다.
인생을 한계를 드러낸 주님의 사역이시다. (출14:12)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섬기는 일, 하나님께 이끌리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일에는 부귀와 영화를 구하는 수고가 용납되지 않는다. (눅12:13-21, 요6:26-27, 요일2:16-17)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부의 시작이고 성취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104:24)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눅17:11- )
이를 간과하면 맘몬에 휘둘리는 삶을 산다. (고전12:1-3)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시57:4 20220911
인생에 대하여 하나님은 육체뿐인,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으로 아신다. (시78:39)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과 판정에 동의하게 되었다면, 그는 하나님께 이끌리는 자이고 함께하는 자이다.
시편57편의 다윗은 자신을 심키려는 자의 비방을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그리고 이러한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의 세계로 이끌림을 받는다.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89:47)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시107:8)
허무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이한 일이 있다.
짧은 시간 소멸되어야 할 불붙은 떨기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기이한 일(출3:2)은 우리의 구원을 설명해 준다.
불사르는 자 중에 있는 자신의 형상이 뚜렷이 보인 곳에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의 복음은 그 세력을 뚜렷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