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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죄/ 히10:26-29 20220209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11

 

[짐짓 죄/ 히10:26-29

 

히브리서 10장 26절의 '짐짓 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29절에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하는 죄'로 설명되어 있다.

'진리를 아는 지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벧후3:18)인 그의 복음'을 듣고 알면서 그 복음을 무시하는 행위를 한글 성경에서는 '짐짓 죄'(kjv고의로 죄를 지으면)로 표기하고 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그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그 진리를 진리로 여기는 마음(믿음, 영)이 없는 자이다. (롬1:28)

바꾸어 말하면, 진리를 진리로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은혜의 복음을 들었지만 그 말씀 속의 영을 거짓 것으로 여기는 세력에 잡혀 있는 자이다.

이 세력은 성령을 훼방하여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결과에 이른다. (막3:28,29)

 

히브리서 10장 19절에서 27절까지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히10:19-25/ 하나님께 나아가 함께 하는 자

2/ 히10:26-27/ 하나님이 제시한 세계를 거부하고 소멸의 현장에 그냥 머문 자

 

1에 속한 자가 2의 결과가 될 수 없다.

거룩하게 된 자들은 영원히 온전케 되었기 때문이다. (히10:14, 요일 5:16-18)

 

2의 결과는 1에 속하지 못하였다는, 또는 1의 세계를 거짓으로 여기는 세력에 속해 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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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의 영/ 롬8:14-17 20220206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10

 

[양자의 영/ 롬8:14-17

 

죄가 깨달아진 마음(롬7:24)에 임한 영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더불어 율법의 요구(義)를 성취한다. (롬8:4)

 

이로써 심판이 경험된 마음에게 준비된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1:13)는 말씀대로 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진 아들들이 누리는 구원의 세계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아들의 첫째는 독생자 예수이고, 둘째는 앞서 설명된 상황 가운데 입양된 양자들이다.

 

양자(養子)의 규례는 친자(親子)가 아닌 자가 친자의 자격과 신분을 얻고 누리는 법적 혜택이다.

양자에게는 친자가 누릴 수 없는 더 감사한 세계가 있다.

 

친자를 십자가에 달아 양자를 입양하시는……, 다 헤아리기 어려운 아버지의 마음의 세계이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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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를 다 팔아/ 마13:44-46 20220202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9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마13:44-46

 

길 가 밭, 돌 밭, 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에 대한 비유는 이 세상과 그 위에 붙어 사는 인생의 마음을 설명해 준다.

결실할 수 없는 밭은 죽음의 땅이다.

이 세상에 스스로 좋은 밭은 없다.(창2:5-6, 창3:17)

 

그러나 그 죽어 있는 땅을 갈아 엎고 돌과 가시떨기를 걷어내는 농부가 있는 땅은 백배 육십배 결실하는 좋은 밭으로 변한다.

 

농부는 밭을 위해 있고 밭은 농부를 기다린다. (사30:18)

 

하나님만이 반석이고 구원이고 산성이 된 사람은, 자기에게 헛되고 거짓된 것만 있는 줄 알게 된 사람이다. (시62:7-9)

 

자기에게서 좋은 것이 열매 맺을 수 없는 사실이 믿어진 마음을 하나님을 귀히 여기시고 자기 소유(독생자)를 팔아 그 마음을 소유하신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소유를 다 팔아 이루어 놓은 구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벧전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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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패/ 마27:37 20220130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8

 

[죄패/ 마27:37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罪名)을 원하였으나 빌라도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으로 기록하였다.

 

당시 유대 기득 종교인들에게 예수는 거짓 그리스도이었다.

이로 인해 예수는 고소를 당하였고, 예수에 대한 빌라도의 판단은 유대 종교인들과 달랐지만 사형 판결에는 함께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사람마다 다르고 죄패에 기록된 내용의 의미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으로 심판을 받았다.

빌라도의 결정이 있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를 정하셨다. (요19:11)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기이한 죄명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우신 '왕'은 십자가에 오르시고 이 '왕'을 거절하는 세력에 의해 못박히셨다.

 

이 '유대인의 왕'에게는 대속을 위해 짊어진 '세상 죄'가 있었다.

자신을 거절하는 능욕의 세력을 포함하여 멀리 숨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자들의 죄까지…….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 지셨다.

기묘자 예수/ 사9:6-7 20220126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7

 

[기묘자 예수/ 사9:6-7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300명의 군사가 135,000의 미디안 군대를 전멸한 사건은 하나님의 전쟁에 관한 기록이다.

구체적인 내용 속에 영적 전쟁의 실체가 담겨 있다.

이 전쟁은 오늘도 하나님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 참전하고 있는 진행형 전쟁이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하나님의 백성은 전쟁에 참여할 것이고, 전쟁 속에서 왕의 기이한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며, 결국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왕의 기묘한 능력과 지혜로운 계획은 자기 백성의 구원과 삶을 이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십 삼만의 군영을 훼파한 것처럼 겨자씨 만한 믿음으로 산과 같은 문제가 처리되는 기이한 능력의 삶이 있다.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지혜와 능력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혜와 능력이고 노래이다.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롬8:24-27 20220123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6/ 소망에 관한 오해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롬8:24-27]

 

보이는 소망에 젖어 사는 인생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는 일은 기적과 같은 구원의 세계이다.

이 구원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라신 하나님이 믿어진 믿음의 구원이고, 이 믿음 안에 소망이 함께 한다. (벧전1:21)

 

보이는 세계에 모든 소망을 둔 인생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사모할 수 없다.

보이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잃은 자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영적 감각이 형성 된다.

 

과부 옷을 벗고 창기의 모습으로 시아버지와 동침할 수 있는 다말의 분별이나(창38:14-19), 다 망하여 돌아가는 시어머니를 붙쫓는 룻에 마음에 맺혀진 소망(룻1:16)은 보이는 세계의 담을 넘어 보이지 않는 생명의 규례에 이르게 한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찌라도 육신의 연약함은 보이는 세계를 거부할 수 없게 한다. (마26:41)

더욱이 이 연약함은 습관적으로 육신의 요구 안에서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으려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마6:24)

 

그러나 자기 자신의 선택을 신뢰할 수 없는,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령의 탄식과 간구하심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는 자'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18 20220119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5/ 사랑에 관한 오해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18]

 

예수께서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제자나 예수를 따르는 자들 중에 부활을 기다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덤의 돌문이 옮겨져 있고, 시체가 보이지 않고, 개껴 있는 세마포를 보면서도 부활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예수를 향한 열심도 있고 정성도 있고 사랑도 있었겠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리라"는 말씀이 그들의 마음 중심에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주님을 향한 베드로의 열심과 정성과 사랑은 주의 말씀 앞에 거부된다.

그 육신의 영역은 하나님의 사랑(고전13:)과 부활의 세계(요11:25)를 담을 수 있는 영역이 못된다.

 

부활하신 예수는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으로 베드로의 마음을 이끄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이다. (막12:31)

계명을 지키는 일은 주의 양을 먹이고 치는 일, 그 사랑을 먹고 마시는 일이다. (요6:54)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요일 3:23 )

믿음에 관한 오해/ 눅17:1-10 20220116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4

 

[믿음에 관한 오해/눅17:1-10]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의 지시에 대하여 사도들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고"믿음을 더하소서"라는 간구로 해법을 찾았다.

그러나 예수의 회답은 양(量)이 아니라 대상과 소속(所屬)의 문제인 것을 밝히신다.

 

믿음의 세계는 뽕나무가 속해 있던 땅의 세력에서 뽑혀 바다의 세력에 옮겨 심겨지는 것과 같은 세계이다.

땅에서 다 뽑혀지지 않고 바다의 세력을 의지하는 자는 여전히 땅에서 바다의 세력을 이용하려는 자이지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인생은 실족할 수밖에 존재로 태어났다.

스스로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지금 실족 중인 자이다.

그러나 자신을 믿는 삶 자체가 실족인 사실을 알게 된 자는 그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에 선 자이다.

 

예수께서 제시한 믿음의 사람은 무익한 종이다.

무익한 종은 주인을 믿는 믿음으로 주인의 음성을 듣고 주인에 속한 삶을 산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무익하다.

 

자기 다리를 의지할 수 없어서 예수라는 세력의 의족으로 걸을 때 실족하지 않는 삶을 누릴 수 있다.

깨끗함을 입은 열 명의 문둥병자 중 사마리아인 문둥병자의 걸음은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걸음이다.

세상이 알지 못한 예수/ 요1:9-13 20220112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3

 

[세상이 알지 못한 예수/요1:9-13]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고, 멸시를 당하고, 귀히 여김을 받지 못한 것은 이미 예고된(사53:3) 상황이다.

이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고 분별할 만한 지혜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참빛인 예수를 알지 못하고 영접지 않는 자기 백성에게 켜서 비취는 등불인 요한의 증거(요5:35)가 제시되었다.

 

요한의 증거는 이 세상과 인생의 정체를 분명히 한다.

먼저 인생들로 하여금 예수를 알지 못하고, 싫어하고, 멸시하고, 거부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보게 한다.

 

이 인생 안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읽지 못한다면 요한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이다.

 

요한의 증거를 통하여 예수가 보이고, 예수의 더 큰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한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6)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3)

예수 탄생/ 마1:18-25: 20220109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2

 

[예수 탄생 마1:18-25]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은 파혼을 결심하였으나 하나님의 계시와 '처녀 잉태'의 예고된 말씀에 이끌림을 받았다.

요섭은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기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비정상적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요셉의 결정은 세상에 속한 결정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마리아의 반응과, 마리아의 임신을 알게 되면서 "일을 드러내지 말고 가만히 끊자"는 요셉의 결심은 세상에 속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결정에 참여한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 나라에 속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속한 기준을 거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부할 수 있는 세력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성령의 역사이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마리아 몸에 잉태된 것처럼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에 성령이 일하므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

 

동방 박사와 헤롯의 만남은 어린 아기들의 살육이라는 참황(慘況)을 낳게 하였다.

이 사건은 예수의 탄생이 복되고 아름답게 기념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너무나 당혹스런 하나님의 연출이다.

더욱이 아기를 잃은 어미에게는 어떤 위로도 용납될 수 없는 처참과비통의 흔적만이 남았다.

 

이스라엘 백성 중 어느 누구도 영접지 않는 상황 중에 오신 이스라엘의 왕, 어린 아기들의 죽음과 연루된 생명의 주,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피해 애굽으로 갔어야 하는 유대의 왕을 이 세상의 기준으로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이번 음성 파일은 없습니다...^^

비정상 예수/ 빌3:7-9: 20220105

**내 마음에 비추인 예수 01

[비정상(非正常) 예수/ 빌3:7-9]

 

물론 예수께서 비정상일 수 없다.

그러나 탄생으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은 인간 세상의 규례나 기준에서 벗어난 비정상의 상황으로 가득하다.

 

비정상적인 판단으로 정상적인 자의 판단이 비정상으로 보일 수 있다.

정상(正常)이란 말의 사전적인 뜻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 인 상태'로 설명된다.

그래서 비정상(非正常)이라는 말은 주로 정상에서 벗어난상태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때로는 긍정의 강조로'비상(非常)'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예수가 믿어진 사람이다.

예수를 향한 나의 판단이 비정상인 줄 알면서 예수가 믿어졌다.

땅이 보여야 하늘이 보인다. (요3:12)

예수의 형상이 보이면서 예수는 여전히 비정상이었다.

예수께서 열어 놓은 새롭고 산길에서 함께하는 예수는 '비상예수(非常耶稣)'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 (빌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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