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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와 놋뱀/ 요3:12-15 20220420

[니고데모와 놋뱀/ 요3:12-15]

 

'거듭남'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는 '물과 성령', 그리고 '모세의 놋뱀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이다.

 

니고데모가 하나님을 믿는 자로, 예수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으로 알고 예수 앞에 왔지만,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은(엡1:13, 5:26, 고전15:35-50) 시각을 얻지 못하여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는 어두운 영역에 머물러 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5)

 

어두움은 스스로 어두움인 줄 알지 못한다.

어두움이 어두움인 줄 알게 하는, 요한의 켜서 비취는 등불(요5:35)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별이다.

 

여전히 대적의 세력 아래 머물러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불뱀과 놋뱀, 저주와 구원의 세계를 나타내셨다. (민21:)

불뱀을 제어할 수 없는 자가 놋뱀을 바라보는 구원에 소망을 둔다. (시65:3)

 

모세의 율법은 인생의 절망적인 상태를 깨닫게 한다. (롬3:20)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이 확정된 자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

 

니고데모에게 필요한 것은 '거듭남'이다.

어두움의 영역에서 빛의 영역으로 옮겨지는 일이다.

먼저 어두움과 절망이 전부인 자신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저주를 감당코자 인자가 들리실 때(율법을 완성하실 때/ 마5:17) 함께 들리는 일이다. (롬6:6)

20220420니고데모와놋뱀Artist Name
00:00 / 50:50

사람과 짐승/ 시편 49편 20220417

[사람과 짐승/ 시49:]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사람이 존귀한 이유는 장구(長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구할 수 없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장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 재물로 장구함을 누리려 한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사람은 장구(영생)하여야 사람이다.(요6:40)

20220417사람과짐승Artist Name
00:00 / 33:22

양과 염소/ 마25:34-36 20220413

[양과 염소/마25:34-36]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고 목말랐을 때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고(요4:32),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갇힌 듯 있을 때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중풍병자를 만났고(막2:),

 

많은 무리 가운데 뽕나무에 올라 있는 삭개오를 만나 그의 집을 쉴 곳으로 정하셨고(눅19:5),

 

회개치 않는 세상을 인하여 탄식하실 때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 가나안 여인을 만났고,

 

벗긴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모든 능욕의 무리 가운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강도를 만났다.

 

이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공통점은 하나님을 향하여 허물이 있고 죄를 지은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는 '양의 형상'들이다.

 

내가 오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있다'고 여긴다면,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염소로 분류될 것이다.(눅18:11,12)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길 수 있는 자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마음으로 충성이 가능하다.(엡3:8)

 

이 마음의 인생의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빌2:5-8)

20220413양과염소Artist Name
00:00 / 48:11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 막2:9-12 20220410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 막2:9-12]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함을 얻는 구원의 세계는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혈루 근원이 마른 줄 몸에 깨닫는 것과 같이 마음에서 경험되는 일이다. (막5:29)

 

중풍으로 사지가 마비가 된 사람이 일어나 걸어갈 수 있으려면 막혔던 뇌 혈관이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처럼,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인생이(엡2:1, 사59:2) 생명을 얻는 일도 막혔던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경험과 함께한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나타내셨다.

이 권세는 이 세상의 집권자들이 임의로 휘두르는 권세와 다르다.

예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을 위한 대속물로 십자가에 오르셨다.(막10:45)

 

이 예수의 권세 속 중심에 흐르는 긍휼과 사랑은 자기 백성을 강권하여 이끌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을 섬기는 권세를 누리게 한다.

20220410땅에서죄을사하는권세Artist Name
00:00 / 29:13

이스라엘의 회복/ 행1:4-8 20220406

[이스라엘의 회복/ 행1:4-8]

 

제자들이 바라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구체적인 실현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마6:10)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기도인가?

 

나는 지금 그 회복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길 바랐으나(눅24:21) 십자가에 달려 죽는 그리스도는 그들이 원하고 기다리는 그리스도일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방황하는 제자들을 찾아 주시고 또 다시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하신다.

 

 

창조의 목적이 영원한 안식, 제 칠일의 성취라면 아담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안식을 예수께서 회복하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아담 안의 세계는 음부와 유명(幽冥)이다. (잠27:20)

이 구덩이에 빠져 있는 자기 영혼의 위치를 깨닫는 자에게 들리는 하나님 아들의 음성이 있다. (요5:25)

이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가 비로소 영원한 안식에 속하여 안식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다.

 

이전에 아담 안에서 아담의 형상만을 나타내는 삶을 살던 자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삶을 산다면, 이 사람이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 삶을 누리는 자가 아닌가?

20220406이스라엘의회복Artist Name
00:00 / 45:43

유교병, 끊쳐지리라/ 출12:15 20220403

[유교병, 끊쳐지리라/ 출12:15]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이고, 견고한 구속의 논리이고, 구원의 내밀한 근거를 제시한다.

 

누룩이 섞이지 않은 떡을 먹는 무교절은 이 유월절에 나타낸 피의 구속과 완전함을 보존코자 하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담은 규례이다.

 

누룩은 부풀리고 꾸미는 세력이다. (눅12:1)

 

하나님의 결정하신 사실에 대하여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성경 전체에 진동하고 있다. (계22:18,19)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백성 중에 끊어진다(창17:14)는 경고와 동일 한 경고가 무교절 규례의 중심에 있다.

 

할례되지 못한 마음과 누룩 있는 떡을 먹는 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휘둘리는 마음이다.

 

유교병, 부풀리고 꾸미는 허구의 세력은 오늘 우리 마음과 생각에 여전하다.

 

이 허구의 세력은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이고 거짓 세계를 제시하며 우리 앞에 다가온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전5:7,8)

20220403유교병Artist Name
00:00 / 55:11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레4: 20220330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레4:]

 

"죄를 깨닫다, 죄를 알게 되다"라는 말의 의미는 이전엔 죄인줄 모르다가 비로소 죄인 줄 알게됨을 나타낸다.

 

만일 죄에 대한 깨달음이 없이 속죄제를 드린다면, 이 제사는여호와께 향기로운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가증한 냄새가 될 것이다. (막7:11)

 

죄(罪)의 어원에서 읽을 수 있는 '과녁을 벗어나다'는 의미를 근거로 본 '죄를 깨달음'은 '벗어나 있는 상태를 알게 되어' 하나님께 고(告)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희생 제물을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는, 드리는 자가 알게 된 깨달음과 이 깨달은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정해 놓으신 제물을 받으시는 결정적인 하나님의 규례이다.

 

성경이 제시한 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는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시작이고 사귐의 근거를 제공하여 준다.(느8:8, 대하34:)

 

'범한 죄에 깨우침'이 없는 구원도 있을 수 없고, 사귐도 있을 수 없다.

죄를 깨닫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깨닫는 지혜가 준비되어 있다. (골2:2,3)

20220330범한죄에깨우침을받거든Artist Name
00:00 / 51:17

두 주인/ 마6:24 20220327

[두 주인/ 마6:24]

 

재물이 많은 청년(마19:16-)에게 재물과 영생을 함께 누리려는마음이 있는 것처럼, 모든 인생의 마음에 재물과 영원한 나라를 함께 누리려는 마음이 있다.(전3:11)

 

그리고 이 청년에게서 영생보다 재물을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드러난 것은, 모든 인생의 마음 중심에는 재물을 섬기는세력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설명해 준다.

 

이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해 줄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잡고 있는 주인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밝혀 준다.

 

맘몬(Mammon, 재물, 헬;맘모나스)은 의인화 된 '부(富)'의 형상이고 모든 인생의 로망이고 섬김의 대상이다.(고전12:2)

 

그러나 이러한 인생 중 옥합의 기름을 예수께 부은 여인(마26:7)이나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마음의 주인이 바뀐 결과를 우리에게 전하여 주고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는 일이나, 사람이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는 일은 두 주인을 섬기려는 일과 같이인생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이 인생을 섬겨 주셨다.(요일4:10)

 

하나님께서 자신을 섬겨주신 사실에 참여하는 자가 하나님이주인된 삶을 사는 자가 아닌가?

20220327두주인Artist Name
00:00 / 1:01:53

보디발과 바로의 요셉/ 창39:2-6, 41:40 20220323

[보디발과 바로의 요셉/ 창39:2-6, 41:40]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과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

그리고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위임함으로 여호와의 복을 얻었다.

 

그러나 보디발과 요셉의 관계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이고 고용주 보디발의 권세는 결국 요셉을 잃는 데 사용된다.

 

반하여 바로와 요셉의 관계는 고용주의 권세(인장 반지)가 피고용주인 요셉에게 위임된 계약이다.

그리고 요셉의 통치하에 바로와 애굽은 생명을 얻는다.

 

보디발은 비록 요셉의 형통한 세계를 보았으나 요셉의 하나님의 세력에 다르려질 수 없었다.

 

바로는 자신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을 들었고, 그 해석 속에서  지존자의 권세 앞에 검불 같은 자신을 보았다.

 

보디발과 바로는 동일한 요셉을 만났으나 그 결과는 "요셉을 통하여 무엇을 보았는가?"에 의해 결정되었다.

20220323보디발과바로의요셉Artist Name
00:00 / 49:54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시2:10-12 20220320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시2:10-12]

 

하나님 나라는 소유욕으로 누릴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엡2:3)

하나님 나라에는 전능자의 그늘과 안식과 만족이 있다.

더 이상의 부족함이 없는, 더 이상 받을 복이 없는 완성된 곳이다.

 

세상의 군왕, 민족, 관원들, 이 열방의 세력은 자신의 만족과 성취를 위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부담과 결박으로 여긴다.

 

열방이 그렇듯이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나라로 만족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면, 이들도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이 대적들을 향한 하나님이 결정은 성경 전체를 관영하고 있다.

 

"나는 이미 나의 왕을 세웠다."

"나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 만족을 구하는 삶의 목마름 가운데 예수를 만났다.

그리고 해갈(解渴)을 경험케 하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증거할수 있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자)가 아니냐?" (요4:29)

 

하나님의 통치 밖에 있던 여인은 예수를 만나 하나님의 아들과 입맞출수 있었다.

20220320그아들에게입맞추라Artist Name
00:00 / 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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